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우산(독도)과 무릉(울릉도)은 풍일(날씨) 청명하면 서로 바라볼 수 있다"
- 세종실록 지리지

1454년에 완성된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날이 좋으면 맨눈으로 동쪽의 섬들을 바라볼 수 있다 했습니다.

우리 국토 최동단에 위치한 울릉도와 독도.

마치 형님과 아우같이 늘어선 두 섬은 하늘과 파도가 맑으면 서로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보인다는 이야기였지요.

억지 반론도 존재합니다.

일본 학계에서 독도 연구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진 가와카미 겐조는 자신의 저서에서 "독도를 볼 수 있는 거리는
고작 59km 이내"라고 했는데.

그 말인즉슨 87.4km 떨어진 울릉도와 독도가 서로 보일 리가 없으니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 또한 허구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2014년 11월 5일 우산과 무릉은 풍일 청명하면 서로 바라볼 수 있다는 기록이 사진으로 증명되었습니다.

사진가의 앵글은 울릉에서 꼬박 3년을 기다리며 그 순간을 담아냈고,

붉은 아침 해가 뜨는 가장 한가운데… 

우리의 영토 독도는 또렷이 등장한 것입니다.

"일본 영토에서 이러한 행위를 한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오늘 그들은 또다시 억지 주장을 꺼냈습니다.

우리 군이 우리의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 군용기를 향해 경고사격을 한 것에 대한 반응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동해의 외롭지 않은 섬 독도는 한·일 간 무역 분쟁의 와중에 또다시 그들의 무례한 입길에 오르내리게 되었지요.

물론 집요하고, 매우 끈질긴. 그들의 주장에 일일이 맞대응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나…

오늘은 울릉도에서 직접 바라본 해 뜨는 독도의 이 모습과 함께 지난해 일본의 영토담당상이 했다는 다소 흥미로운 발언을 소개해드립니다.  

"저쪽 방향에 일본 고유의 영토가 있다는 걸 확신했다. 물론 독도가 보이진 않았지만…."

독도와 제일 가까운 일본 섬은 오키섬…

그 거리는 157.5 km…

울릉도보다 두 배쯤 멀리 있으니 보고 싶어도 못 봅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2019.7.23)

☞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알베르 카뮈' (1913~1960)

 

실존을 이야기한 작가.

 

그러나 하마터면 우리는 그를 '작가'가 아닌 '축구선수'로 기억할 뻔했습니다.

 

그는 열일곱 살이 될 때까지 학교의 축구 대표선수로 활동했으나 가난과 결핵으로 선수의 꿈을 포기했다고 하지요.

 

그것이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축구와 문학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걸 말이라고. 당연히 축구지!"

 

심지어 그 축구에 대한 미련은 길게 이어져서 195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뒤에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오직 축구에서 배웠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새벽.

 

그리고 어제 새벽이 있기까지

 

스무 살이 채 안 된 선수들의 그 극적인 승부를 지켜보며 사람들은 새삼 축구를 다시 배웠습니다.

 

"언어가 아닌 것을 주고받으면서

이토록 치열할 수 있을까"

- 문정희 < 축구 >

 

한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축구란 그야말로 '언어가 아닌 것을 주고받으면서 이토록 치열할 수 있는' 눈부심이었던 것이지요.

 

반대로 지금의 세상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겐 절대로 공을 넘기지 않으려는 막말과 다툼으로만 가득하니

 

"형들이 저를 많이 도와주셔서" 이강인 선수

"'빛광연'이 잘 막아 줬다" 최준 선수

"다른 골키퍼들이 뛰었더라도 빛이 났을 것" 이광연 선수

 

나를 높이기보다 동료를 더 높이고자 했던 어린 선수들의 말은 조금 교과서 같은 첨언이긴 하지만어른들의 세상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었다고나 할까.

 

물론. 사는 일이란. 90분 안에 마무리되는 축구 경기와는 사뭇 달라서 축구와 삶을 하나하나 비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공은 기대하는 방향에서는 결코 오지 않는다"

- 알베르 카뮈

 

축구를 꿈꾸었으나 좌절한 카뮈의 인생이 그러했듯 선함이 반드시 선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축구로부터 배워야 하는 최소한의 것들은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닐까

 

경기장에 서면 온 힘을 다해 뛰어야 한다는 것. 누군가 반칙이나 꼼수를 부린다 해도 모두가 바라보고 있기에 결국 그것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

 

"그걸 말이라고. 당연히 축구지!"

 

이러니 카뮈는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일까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2019.6.17)


☞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10여 년 전, 저는 이미 퇴임한 대통령을 2번이나 인터뷰했습니다.

 

마지막이 된 두 번째 인터뷰는 그의 동교동 자택 거실에서 있었지요.

 

"이 거실에서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인터뷰한 사람은 당신뿐"이라고 그는 저를 추켜세우기도 했습니다.

 

이 인터뷰 얘기는 과거에 앵커브리핑에서 잠깐 쓰긴 했습니다만

 

오늘은 그때 그 장면에서 숨겨져 있던 1인치랄까

 

그 속에 있던 사람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날 인터뷰가 끝나고 물러가려는 저를 그는 돌려세웠습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저를 돌려세운 사람은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이희호 여사.

 

그렇게 해서 제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서 "고향이 호남도 아니면서 무슨 삼합을 그리 좋아하느냐"는 핀잔 아닌 핀잔을 들었던 점심을 먹고 오게 된 것이지요.

 

아래위 흰 정장을 차려입은 이희호 여사는 식사를 시작할 때 했던 한 마디

 

"많이 드세요"를 빼고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조용한 가운데 발하고 있던 존재감이란

 

지금까지도 저의 기억에는 삼합을 두고 제가 DJ로부터 들었던 핀잔보다 그의 조용한 존재감이 더 선명하니까요.

 

"대체로 역사 속 이름 없는 이들은 여성이었다"고 했던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조명이 켜진 세상의 뒤켠에는 감춰진 누군가의 알 수 없는 희생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때 했더랬습니다.

 

김대중. 이희호.

 

두 사람의 이름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는 것은 가능할까

 

이희호는 그렇게 김대중의 버팀목이 됐습니다.

 

"더 강한 투쟁을 하시고급히 서두르지 마세요."

- 19721219일 편지 (자료 : < 옥중서신2 > 시대의창)

 

"좁고 험한 길, 참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는 것에 더 희망이 보입니다"

- 1977521일 편지 (자료 : < 옥중서신2 > 시대의창)

 

결혼식 열흘 뒤 감옥에 끌려가서 갇혀버린 젊은 정치인 김대중

 

"그러기에 실망하지 않습니다우리의 뜻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 1977617일 편지

 

그러나 "당신을 사랑하는 희호" 라고 마무리된 아내의 편지는 그보다 강인했습니다.

 

"나는 늘 아내에게 버림받을까 봐 나 자신의 정치적 지조를 바꿀 수 없었다"고 했던 그의 말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그날

 

삼합으로 허기를 채운 점심 후에 동교동 자택을 나설 때도

 

이미 오래전, 동교동 집 대문 앞에 걸어둔 '김대중.' 이희호. 나란한 부부의 문패는 그렇게 걸려있었습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2019.6.11)


☞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밤 당신의 머리 위에서 빛나는 별들이 실제로는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것이 틀린 얘긴 아니지요.

빛의 속도로 일 년 동안 달렸을 때 도달하는 거리가 1광년이라고 하는데…

우리 눈에 보이는 별들은 짧게는 4.3 광년부터 길게는 헤아릴 수 없는 그 이상까지…
 
그러니까 우리 눈에 도달한 별들은 같은 시간에 존재하지도 않지만, 동시에 또한 존재하는…

모순의 존재들입니다.

인간의 감성을 한없이 아름답게 끌어낼 수 있는 별들을 이런 식으로 분석한다면 그 수많은 감성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제 석 달 뒤면…

인간이 달에 발을 디딘 지 꼭 50주년이 되는 날인데…

50년 전의 그 날, 그러니까 1969년 7월 21일 저녁에 저는 장독대에 올라서 달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같은 시간, 마루에 놓인 흑백텔레비전에서는 닐 암스트롱이 황량한 달 표면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이것은 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아주 작은 발자국이지만…뭐라 뭐라' 이렇게 하는 그 유명한 말을 남기고 있었지요.

"이것은 한 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 닐 암스트롱, 우주비행사

그러니까 저는 암스트롱이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디딘 그 역사적인 순간에 텔레비전에서 뿐만이 아니라 저의 육안으로도 동시에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바라본 그리 많지 않은 지구인 중의 하나였다는 얘기…

다음날부터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달에는 계수나무와 방아 찧는 토끼는 존재하지 않는다…그러니 달에 대한 낭만의 시대는 갔다고 말입니다.

별과 달에서 그렇게 과학은 낭만과 신화를 지워갔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런 얘기…

1756년 여름, 인도 콜카타의 후글리 강변.

벵골의 태수인 시라지의 군대에 포로로 잡힌 영국인들은 매우 어둡고 비좁은 감옥에서 단 하룻밤을 보내면서도 숨 막히는 무더위에 대부분 죽고 말았는데 그 악몽의 방의 이름은 바로 '블랙홀'…

그로부터도 150여 년이 지나서야 아인슈타인은 머나먼 우주에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는 블랙홀의 존재를 주장했지만, 실제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요.

그래서 이론 물리학자 킵 손의 말처럼 블랙홀은 그 이름의 연원부터가 좀 공포스럽긴 해도 신화의 영역에 더 어울리는 존재였을지도 모릅니다.

"블랙홀은 실제 우주보다 공상과학과 옛날 신화의 영역에 더 어울리는 것처럼 보인다"
- 킵 손, 이론물리학자

그러나…

이것도 역시 신화로 남기엔 틀렸습니다.

과학은 그 존재를 이렇게 공개해 버렸으니까요.

자, 이렇게 다 들여다보았으니 이제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돌이켜보면 윤동주는 왜 동시에 존재하지 않았던 별들을 헤었고, 아이들은 왜 달에 사는 토끼를 꿈꾸었을까…

그리고…

그 거대한 우주의 한 점에도 이르지 못하는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애가 닳고, 분노하고, 탐욕을 키우는가…

"저 창백한 푸른 점을 보세요. 저것이 우리가 사는 지구입니다…멀리서 찍힌 이 사진만큼 인간이 어리석다는 걸 잘 보여주는 건 없을 겁니다."
- 칼 세이건, 천문학자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2019년 4월11일)


                            ☞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노회찬. 한 사람에 대해, 그것도 그의 사후에… 세 번의 앵커브리핑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은 이보다 며칠 전에 그의 죽음에 대한 누군가의 발언이 논란이 되었을 때 했어야 했으나 당시는 선거전이 한창이었고, 저의 앵커브리핑이 선거전에 연루되는 것을 피해야 했으므로 선거가 끝난 오늘에야 내놓게 되었음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제가 학교에서 몇 푼 거리 안 되는 지식을 팔고 있던 시절에 저는 그를 두 어 번 저의 수업 시간에 초대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처음에는 저도 요령을 부리느라 그를 불러 저의 하루 치 수업 준비에 들어가는 노동을 줄여보겠다는 심산도 없지 않았지요. 저의 얕은 생각을 몰랐을 리 없었겠지만, 그는 그 바쁜 와중에도 아주 흔쾌히 응해주었습니다. 다음 해, 또 그다음 해까지 그는 저의 강의실을 찾아주었지요. 그때마다 제가 그를 학생들에게 소개할 때 했던 말이 있습니다. 노 의원은 앞과 뒤가 같은 사람이고, 처음과 끝이 같은 사람이다… 그것은 진심이었습니다. 제가 그를 속속들이 알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정치인 노회찬은 노동운동가 노회찬과 같은 사람이었고, 또한 정치인 노회찬은 휴머니스트로서의, 자연인 노회찬과도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등진 직후에 전해드렸던 앵커브리핑에서 저는 그와의 몇 가지 인연을 말씀드렸습니다. 가령 그의 첫 텔레비전 토론과 마지막 인터뷰의 진행자가 저였다는 것 등등… 그러나 그것은 어찌 보면 인연이라기보다는 그저 우연에 가까운 일이었을 터이고… 그런 몇 가지의 일화들을 엮어내는 것만으로 그가 가졌던 현실정치의 고민마저 다 알아채고 있었다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놀라운 죽음 직후에 제가 알고 있던 노회찬이란 사람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를 한동안 고심했고, 그 답을 희미하게 찾아내 가다가… 결국은 또 다른 세파에 떠밀려 그만 잊어버리고 있던 차에… 논란이 된 그 발언은 나왔습니다. "돈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의 정신을 이어받아서야…" 거리낌없이 던져놓은 그 말은 파문에 파문을 낳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순간에 그 덕분에 한동안 잊고 지냈던 노회찬에 대한 규정, 혹은 재인식을 생각해냈던 것입니다. 즉, 노회찬은 '돈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아니라 적어도 '돈 받은 사실이 끝내 부끄러워 목숨마저 버린 사람'이라는 것… 그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큰 비리를 지닌 사람들의 행태를 떠올린다면… 우리는 세상을 등진 그의 행위를 미화할 수는 없지만… 그가 가졌던 부끄러움은 존중해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그에 대한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빼버린 그 차디찬 일갈을 듣고 난 뒤 마침내 도달하게 된 저의 결론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의 동갑내기 노회찬에게 이제야 비로소 작별을 고하려 합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2019년 4월4일)


☞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사설] 손 앵커님에게 보내는 마음의 글
: 손석희 앵커님의 진심이 그대로 전해지는 브리핑이었습니다.
노회찬 의원님은 국민을 위해 많이 애쓰신 우리가 바라는 국회의원이었습니다. 너무 마음아픈일입니다. 귀한분을 우리가 만나뵐수가 없게 되었으니.

노회찬의원님과의 작별인사를 전하기가 힘든 손석희 앵커님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눈물이 많이 납니다.

손석희 앵커님..건강 잘 챙기시고 힘내세요. 저희가 늘 응원합니다. 손 앵커님이 계셔서 그래도 희망을 갖고 살아갑니다.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