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1960년대 서울 명동 골목에는 일본 잡지 파는 가게가 줄지어 있었습니다. 각종 여성 잡지들이 열을 맞춰 놓여있고 사람들은 들척들척 들었다 놨다 하다가… 단골 구독하던 잡지를 하나 찾아내 사들고 돌아서곤 했지요. 생각해보면 광복을 맞은 지 불과 20년도 안 됐던 시기였습니다. 중간에 한국전쟁을 겪고, 4·19 혁명과 5·16 군사 정변이라는 역사적 사건들을 겪어낸 후에 이제 조금씩 일상의 재미를 찾아가던 때… 사람들은 아직은 상대의 언어가 여전히 익숙했던 것도 사실이었지요. 그것은 식민지 시절, 본의 아니게 몸에 익숙해졌던 것들 때문에 습관처럼 돼버린 무엇이 아니었을까… 당시의 여성잡지의 표지 인물로 가장 많이 등장했던 인물이 바로 미치코 왕세자 비었습니다. 이제 왕실로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는 일본에서는 단연 화제의 인물이었고 잡지에서는 앞다투어 그의 사진을 표지에 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보다 몇년 전에는 결혼식 때는 텔레비전이 엄청나게 팔려나가 일본이 대량소비사회로 진입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분석까지 나왔습니다. 남의 나라… 그것도 우리를 식민지배했던 나라의 왕세자비가 뭐가 그리 관심의 대상이었을까 싶기도 했지만… 그의 얼굴이 표지로 등장한 잡지들은 서울 명동 골목에서도 꽤 많이 팔려나갔습니다. 그리고 50여 년… 그의 얼굴이 젊음에서 노년으로 옮겨가는 동안애 그 얼굴은 조금씩 더 온화해져 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사이에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부침을 거듭하면서도 결론은 늘 변하지 않은 것으로 귀결되곤 했습니다. 오늘 그 일본 왕이 퇴위하는 날이라는데…

사실 한·일 관계는 언제가 최악이랄 것도 없이 요즘도 최악이란 평가를 듣고 있죠.

 

전범이었던 그의 부친에 대한 반작용이랄까

 

"일본이 한반도 여러분께 크나큰 고통을 안겨준 시대가 있었고 그에 대한 슬픔은 항상 기억에 남아 있다"

- 아키히토 일왕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 방일 당시)

 

오늘 퇴위한 일왕은 그래도 한일 관계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입장이었고

 

그래서 오늘의 퇴위사에서도 사람들은 막 나가는 아베와는 다른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일본과 세계 여러분들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 2019430, 아키히토 일왕 퇴위사

 

자신들이 저질렀던 일들에 대한 사과가 그토록 어려운 저 땅의 정치인들에게 그의 진정성 있는 한마디가 필요했던 오늘

 

그의 옆에 미치코 왕비는 여전히 온화한 얼굴로 서 있었으니

 

이래저래 또 한 시대가 가는데

 

새로 오는 시대에는 무엇이 변할 것인가

 

아니면 변하지 않을 것인가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2019.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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