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 윤석열/당시 여주지청장 (20131021/서울고검 국정감사)

 

그의 말은 명언처럼 회자되었습니다.

 

지난 정부 국정농단 특검의 중추였던 사람.

 

검사는 수사로 말할 뿐

 

결코 권력자에게 줄 서지 않는다는 의미를 품은 그의 말은 모두의 마음을 조금씩 들뜨게 만들었죠.

 

검찰은, 그리고 나라는, 이제는 달라질 수 있을까

 

이미 알려진 것처럼 검찰의 과거는 그리 자랑스럽지 못합니다.

 

"정권은 유한하고 검찰은 무한하다"

 

정권의 안위가 무엇보다 중요했던 권력일수록 검찰을 최대한 이용하려 해왔고, 그러한 공생의 과정에서 그들은 무소불위의 지위에 올랐으니까요.

 

"'검찰' 다워질 마지막 기회다"

- 참여연대

 

탄핵정국 당시에 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이 원한 것은 제대로 된 나라, 즉 헌법대로 삼권 분립이 지켜지고 시민이 주인인 나라였고, 그 핵심과제 중의 하나가 바로 검찰개혁이었기에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총장을 임명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추운 겨울 광장에 섰던 사람들은 그 겨울에 가졌던 희망만큼이나 커다란 고민에 빠져 있는 것

 

사람에 충성하지 않고 수사로 말한다는 그의 소신을 존중하는 한편으로는, 혹 그러한 소신이 검찰 지상주의의 오류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자라나는 것이지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았습니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 말에 앞서 또 다른 대화가 존재합니다.

 

"(조직을 사랑합니까?) , 대단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 윤석열/당시 여주지청장 (20131021/서울고검 국정감사)

 

"나는 검찰주의자가 아닌 헌법주의자" 라고 말했지만, 어떤 이들은 그를 '검찰주의자' 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는 검찰주의자그가 가진 이데올로기는 보수도 진보도 아니고 바로 검찰"

- 성한용/선임기자 (201999/한겨레)

 

사람에게는 충성하지 않지만 조직에 충성하는 것은 어찌 보면 그에겐 본능과도 같은 일일지도 모를 일이죠.

 

그러나 그가 충성하지 않겠다는 사람은 분명히 권력자일 것이고, 우리는 그런 그의 소신이 반갑고 소중하지만 동시에 그는 검찰조직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 즉, 시민에게 충성할 것이라는 믿음을 우리는 갖고 싶다는 것.

 

그래서 그가 말한 것은 궁극에는 한 사람을 위한 검찰이 아닌, 말 없는 다수의 사람들

 

공화국의 시민들을 위한 검찰이라는 뜻이어야 한다는 것.

 

검찰개혁이란 명제는 한국 사회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부정하기 어려운 것이라면 이를 위한 시간은 지금도 가차 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2019.10.2)


☞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1960년대 서울 명동 골목에는 일본 잡지 파는 가게가 줄지어 있었습니다. 각종 여성 잡지들이 열을 맞춰 놓여있고 사람들은 들척들척 들었다 놨다 하다가… 단골 구독하던 잡지를 하나 찾아내 사들고 돌아서곤 했지요. 생각해보면 광복을 맞은 지 불과 20년도 안 됐던 시기였습니다. 중간에 한국전쟁을 겪고, 4·19 혁명과 5·16 군사 정변이라는 역사적 사건들을 겪어낸 후에 이제 조금씩 일상의 재미를 찾아가던 때… 사람들은 아직은 상대의 언어가 여전히 익숙했던 것도 사실이었지요. 그것은 식민지 시절, 본의 아니게 몸에 익숙해졌던 것들 때문에 습관처럼 돼버린 무엇이 아니었을까… 당시의 여성잡지의 표지 인물로 가장 많이 등장했던 인물이 바로 미치코 왕세자 비었습니다. 이제 왕실로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는 일본에서는 단연 화제의 인물이었고 잡지에서는 앞다투어 그의 사진을 표지에 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보다 몇년 전에는 결혼식 때는 텔레비전이 엄청나게 팔려나가 일본이 대량소비사회로 진입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분석까지 나왔습니다. 남의 나라… 그것도 우리를 식민지배했던 나라의 왕세자비가 뭐가 그리 관심의 대상이었을까 싶기도 했지만… 그의 얼굴이 표지로 등장한 잡지들은 서울 명동 골목에서도 꽤 많이 팔려나갔습니다. 그리고 50여 년… 그의 얼굴이 젊음에서 노년으로 옮겨가는 동안애 그 얼굴은 조금씩 더 온화해져 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사이에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부침을 거듭하면서도 결론은 늘 변하지 않은 것으로 귀결되곤 했습니다. 오늘 그 일본 왕이 퇴위하는 날이라는데…

사실 한·일 관계는 언제가 최악이랄 것도 없이 요즘도 최악이란 평가를 듣고 있죠.

 

전범이었던 그의 부친에 대한 반작용이랄까

 

"일본이 한반도 여러분께 크나큰 고통을 안겨준 시대가 있었고 그에 대한 슬픔은 항상 기억에 남아 있다"

- 아키히토 일왕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 방일 당시)

 

오늘 퇴위한 일왕은 그래도 한일 관계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입장이었고

 

그래서 오늘의 퇴위사에서도 사람들은 막 나가는 아베와는 다른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일본과 세계 여러분들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 2019430, 아키히토 일왕 퇴위사

 

자신들이 저질렀던 일들에 대한 사과가 그토록 어려운 저 땅의 정치인들에게 그의 진정성 있는 한마디가 필요했던 오늘

 

그의 옆에 미치코 왕비는 여전히 온화한 얼굴로 서 있었으니

 

이래저래 또 한 시대가 가는데

 

새로 오는 시대에는 무엇이 변할 것인가

 

아니면 변하지 않을 것인가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2019.4.30)


☞ 손석희의 앵커브리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