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대규모의 총격전이 벌어진 그곳은 서울 시내 한복판이었습니다.

남북한 비밀 요원들은 핵무기를 뺏고 빼앗기며 목숨을 건 추격전에 나섭니다.

드라마 < 아이리스 > 의 결정적인 장면이었지요.

촬영된 곳은 광화문광장 한복판이었습니다.

드라마 때문에 광장을 통제하다니…

더구나 2009년 그 당시는 광장에서 시위를 하는 것조차 좀처럼 허용되지 않던 시기였습니다.

"아이리스는 되는데 우리는 왜 안 되나" 시민들은 시위는 막으면서 드라마에 광장을 열어준 당국의 이중 잣대에 문제를 제기했던 기억입니다.

그때를 생각한다면 오늘의 광장은 그야말로 열린 공간 그 자체입니다.

누군가의 표현대로, 우리의 민주주의는 광장이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가히 '최고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지요.

광화문 물론, 검찰청과 여의도, 그리고 청와대 앞까지 개방된 광장의 풍경은 달라진 세상을 실감하게 만듭니다.

치고 빠지는 수법으로 텐트를 설치해가면서 주목을 끌었던 이들을 시작으로 해서 주말의 대한문 인근은 차도까지 점거해가며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시위대의 세상입니다.

아스팔트 거리 한복판에선 밤을 지새우는 이른바 구국통성기도회가 열리고 태극기와 노숙 텐트는 물론이고 외국 악기인 부부젤라까지 동원돼서 인근 주민들의 일상을 방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광장이란 누구에게나 열린 장소라고 하는데…

민주사회 시민에게 '광장이란 대체 무엇인가'라는 매우 근본적인 질문이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이지요.

1년 전에 세상을 떠난 작가 최인훈.
 

인간은 광장에 나서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표범의 가죽으로 만든 징이 울리는
원시인의 광장으로부터…
현대적 산업 구조의 미궁의 이르기까지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는 수많은 광장이 있다

- 최인훈 < 광장 >

그의 일생을 지배한 화두는 바로 '광장'이었습니다.
 

광장이 죽은 곳. 이게 남한 아닙니까?

- 최인훈 < 광장>

그의 작품 속 주인공 이명준은 남과 북 어디에서도 끝내 자신의 '광장'을 찾지 못하고 절망했습니다.

그리고 2019년 겨울의 광장.

모두에게 열려 있으나, 그 열려 있음을 빌미로 해서 점유되어버린 무법의 공간.
 

다만 나에게 한 뼘의 광장과 한 마리의 벗을 달라

- 최인훈 < 광장 >

시민들의 공간을 점거한 그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사이에 소설 < 광장 > 의 이명준은 오늘도 어디에선가 진정한 민주주의의 광장을 찾아 헤매고 있을까…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2019.11.26)


☞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노회찬. 한 사람에 대해, 그것도 그의 사후에… 세 번의 앵커브리핑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은 이보다 며칠 전에 그의 죽음에 대한 누군가의 발언이 논란이 되었을 때 했어야 했으나 당시는 선거전이 한창이었고, 저의 앵커브리핑이 선거전에 연루되는 것을 피해야 했으므로 선거가 끝난 오늘에야 내놓게 되었음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제가 학교에서 몇 푼 거리 안 되는 지식을 팔고 있던 시절에 저는 그를 두 어 번 저의 수업 시간에 초대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처음에는 저도 요령을 부리느라 그를 불러 저의 하루 치 수업 준비에 들어가는 노동을 줄여보겠다는 심산도 없지 않았지요. 저의 얕은 생각을 몰랐을 리 없었겠지만, 그는 그 바쁜 와중에도 아주 흔쾌히 응해주었습니다. 다음 해, 또 그다음 해까지 그는 저의 강의실을 찾아주었지요. 그때마다 제가 그를 학생들에게 소개할 때 했던 말이 있습니다. 노 의원은 앞과 뒤가 같은 사람이고, 처음과 끝이 같은 사람이다… 그것은 진심이었습니다. 제가 그를 속속들이 알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정치인 노회찬은 노동운동가 노회찬과 같은 사람이었고, 또한 정치인 노회찬은 휴머니스트로서의, 자연인 노회찬과도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등진 직후에 전해드렸던 앵커브리핑에서 저는 그와의 몇 가지 인연을 말씀드렸습니다. 가령 그의 첫 텔레비전 토론과 마지막 인터뷰의 진행자가 저였다는 것 등등… 그러나 그것은 어찌 보면 인연이라기보다는 그저 우연에 가까운 일이었을 터이고… 그런 몇 가지의 일화들을 엮어내는 것만으로 그가 가졌던 현실정치의 고민마저 다 알아채고 있었다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놀라운 죽음 직후에 제가 알고 있던 노회찬이란 사람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를 한동안 고심했고, 그 답을 희미하게 찾아내 가다가… 결국은 또 다른 세파에 떠밀려 그만 잊어버리고 있던 차에… 논란이 된 그 발언은 나왔습니다. "돈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의 정신을 이어받아서야…" 거리낌없이 던져놓은 그 말은 파문에 파문을 낳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순간에 그 덕분에 한동안 잊고 지냈던 노회찬에 대한 규정, 혹은 재인식을 생각해냈던 것입니다. 즉, 노회찬은 '돈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아니라 적어도 '돈 받은 사실이 끝내 부끄러워 목숨마저 버린 사람'이라는 것… 그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큰 비리를 지닌 사람들의 행태를 떠올린다면… 우리는 세상을 등진 그의 행위를 미화할 수는 없지만… 그가 가졌던 부끄러움은 존중해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그에 대한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빼버린 그 차디찬 일갈을 듣고 난 뒤 마침내 도달하게 된 저의 결론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의 동갑내기 노회찬에게 이제야 비로소 작별을 고하려 합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2019년 4월4일)


☞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사설] 손 앵커님에게 보내는 마음의 글
: 손석희 앵커님의 진심이 그대로 전해지는 브리핑이었습니다.
노회찬 의원님은 국민을 위해 많이 애쓰신 우리가 바라는 국회의원이었습니다. 너무 마음아픈일입니다. 귀한분을 우리가 만나뵐수가 없게 되었으니.

노회찬의원님과의 작별인사를 전하기가 힘든 손석희 앵커님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눈물이 많이 납니다.

손석희 앵커님..건강 잘 챙기시고 힘내세요. 저희가 늘 응원합니다. 손 앵커님이 계셔서 그래도 희망을 갖고 살아갑니다.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