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알베르 카뮈' (1913~1960)

 

실존을 이야기한 작가.

 

그러나 하마터면 우리는 그를 '작가'가 아닌 '축구선수'로 기억할 뻔했습니다.

 

그는 열일곱 살이 될 때까지 학교의 축구 대표선수로 활동했으나 가난과 결핵으로 선수의 꿈을 포기했다고 하지요.

 

그것이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축구와 문학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걸 말이라고. 당연히 축구지!"

 

심지어 그 축구에 대한 미련은 길게 이어져서 195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뒤에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오직 축구에서 배웠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새벽.

 

그리고 어제 새벽이 있기까지

 

스무 살이 채 안 된 선수들의 그 극적인 승부를 지켜보며 사람들은 새삼 축구를 다시 배웠습니다.

 

"언어가 아닌 것을 주고받으면서

이토록 치열할 수 있을까"

- 문정희 < 축구 >

 

한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축구란 그야말로 '언어가 아닌 것을 주고받으면서 이토록 치열할 수 있는' 눈부심이었던 것이지요.

 

반대로 지금의 세상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겐 절대로 공을 넘기지 않으려는 막말과 다툼으로만 가득하니

 

"형들이 저를 많이 도와주셔서" 이강인 선수

"'빛광연'이 잘 막아 줬다" 최준 선수

"다른 골키퍼들이 뛰었더라도 빛이 났을 것" 이광연 선수

 

나를 높이기보다 동료를 더 높이고자 했던 어린 선수들의 말은 조금 교과서 같은 첨언이긴 하지만어른들의 세상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었다고나 할까.

 

물론. 사는 일이란. 90분 안에 마무리되는 축구 경기와는 사뭇 달라서 축구와 삶을 하나하나 비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공은 기대하는 방향에서는 결코 오지 않는다"

- 알베르 카뮈

 

축구를 꿈꾸었으나 좌절한 카뮈의 인생이 그러했듯 선함이 반드시 선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축구로부터 배워야 하는 최소한의 것들은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닐까

 

경기장에 서면 온 힘을 다해 뛰어야 한다는 것. 누군가 반칙이나 꼼수를 부린다 해도 모두가 바라보고 있기에 결국 그것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

 

"그걸 말이라고. 당연히 축구지!"

 

이러니 카뮈는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일까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2019.6.17)


☞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10여 년 전, 저는 이미 퇴임한 대통령을 2번이나 인터뷰했습니다.

 

마지막이 된 두 번째 인터뷰는 그의 동교동 자택 거실에서 있었지요.

 

"이 거실에서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인터뷰한 사람은 당신뿐"이라고 그는 저를 추켜세우기도 했습니다.

 

이 인터뷰 얘기는 과거에 앵커브리핑에서 잠깐 쓰긴 했습니다만

 

오늘은 그때 그 장면에서 숨겨져 있던 1인치랄까

 

그 속에 있던 사람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날 인터뷰가 끝나고 물러가려는 저를 그는 돌려세웠습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저를 돌려세운 사람은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이희호 여사.

 

그렇게 해서 제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서 "고향이 호남도 아니면서 무슨 삼합을 그리 좋아하느냐"는 핀잔 아닌 핀잔을 들었던 점심을 먹고 오게 된 것이지요.

 

아래위 흰 정장을 차려입은 이희호 여사는 식사를 시작할 때 했던 한 마디

 

"많이 드세요"를 빼고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조용한 가운데 발하고 있던 존재감이란

 

지금까지도 저의 기억에는 삼합을 두고 제가 DJ로부터 들었던 핀잔보다 그의 조용한 존재감이 더 선명하니까요.

 

"대체로 역사 속 이름 없는 이들은 여성이었다"고 했던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조명이 켜진 세상의 뒤켠에는 감춰진 누군가의 알 수 없는 희생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때 했더랬습니다.

 

김대중. 이희호.

 

두 사람의 이름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는 것은 가능할까

 

이희호는 그렇게 김대중의 버팀목이 됐습니다.

 

"더 강한 투쟁을 하시고급히 서두르지 마세요."

- 19721219일 편지 (자료 : < 옥중서신2 > 시대의창)

 

"좁고 험한 길, 참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는 것에 더 희망이 보입니다"

- 1977521일 편지 (자료 : < 옥중서신2 > 시대의창)

 

결혼식 열흘 뒤 감옥에 끌려가서 갇혀버린 젊은 정치인 김대중

 

"그러기에 실망하지 않습니다우리의 뜻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 1977617일 편지

 

그러나 "당신을 사랑하는 희호" 라고 마무리된 아내의 편지는 그보다 강인했습니다.

 

"나는 늘 아내에게 버림받을까 봐 나 자신의 정치적 지조를 바꿀 수 없었다"고 했던 그의 말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그날

 

삼합으로 허기를 채운 점심 후에 동교동 자택을 나설 때도

 

이미 오래전, 동교동 집 대문 앞에 걸어둔 '김대중.' 이희호. 나란한 부부의 문패는 그렇게 걸려있었습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2019.6.11)


☞ 손석희의 앵커브리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