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10여 년 전, 저는 이미 퇴임한 대통령을 2번이나 인터뷰했습니다.
마지막이 된 두 번째 인터뷰는 그의 동교동 자택 거실에서 있었지요.
"이 거실에서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인터뷰한 사람은 당신뿐"이라고 그는 저를 추켜세우기도 했습니다.
이 인터뷰 얘기는 과거에 앵커브리핑에서 잠깐 쓰긴 했습니다만…
오늘은 그때 그 장면에서 숨겨져 있던 1인치랄까…
그 속에 있던 사람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날 인터뷰가 끝나고 물러가려는 저를 그는 돌려세웠습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저를 돌려세운 사람은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이희호 여사.
그렇게 해서 제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서 "고향이 호남도 아니면서 무슨 삼합을 그리 좋아하느냐"는 핀잔 아닌 핀잔을 들었던 점심을 먹고 오게 된 것이지요.
아래위 흰 정장을 차려입은 이희호 여사는 식사를 시작할 때 했던 한 마디…
"많이 드세요"를 빼고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조용한 가운데 발하고 있던 존재감이란…
지금까지도 저의 기억에는 삼합을 두고 제가 DJ로부터 들었던 핀잔보다 그의 조용한 존재감이 더 선명하니까요.
"대체로 역사 속 이름 없는 이들은 여성이었다"고 했던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조명이 켜진 세상의 뒤켠에는 감춰진 누군가의 알 수 없는 희생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때 했더랬습니다.
김대중. 이희호.
두 사람의 이름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는 것은 가능할까…
이희호는 그렇게 김대중의 버팀목이 됐습니다.
"더 강한 투쟁을 하시고…급히 서두르지 마세요."
- 1972년 12월 19일 편지 (자료 : < 옥중서신2 > 시대의창)
"좁고 험한 길, 참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는 것에 더 희망이 보입니다"
- 1977년 5월 21일 편지 (자료 : < 옥중서신2 > 시대의창)
결혼식 열흘 뒤 감옥에 끌려가서 갇혀버린 젊은 정치인 김대중…
"그러기에 실망하지 않습니다…우리의 뜻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 1977년 6월 17일 편지
그러나 "당신을 사랑하는 희호" 라고 마무리된 아내의 편지는 그보다 강인했습니다.
"나는 늘 아내에게 버림받을까 봐 나 자신의 정치적 지조를 바꿀 수 없었다"고 했던 그의 말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그날…
삼합으로 허기를 채운 점심 후에 동교동 자택을 나설 때도…
이미 오래전, 동교동 집 대문 앞에 걸어둔 '김대중.' 이희호. 나란한 부부의 문패는 그렇게 걸려있었습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2019.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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