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13년 전의 오늘(26) 모든 신문 1면의 주인공은 바로 이 사람들.

 

한국 최초의 우주인 후보가 정해졌다는 소식에 모두가 가졌던 첫 번째 생각은 아마 '우리도(언젠가)' 였을 것입니다.

 

물론 결말은 해피엔딩으로 남지 못했지요.

 

몇 년 지나지 않아서 희망은 가라앉았고 우주는 다시 우리 삶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골든 레코드

우주탐사선 보이저호에 담은 지구를 알리는 음반

 

그보다 더 오래전인 1977년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구리로 만든 LP판 모양의 '골든 레코드'를 보이저 1호와 2호에 실어서 우주로 보냈습니다.

 

"안녕하세요? 지구인입니다"

 

이 골든 레코드는 서로 다른 쉰다섯 개의 언어로 녹음한 인사말과 인류가 사랑한 음악과 사진을 품은 채로 지금 이 시간에도 우주를 유영하고 있을 터인데, 칼 세이건의 그 소망처럼 우리는 언젠가 새로운 우주를 만날 수 있을까

 

"그들은 분명히 알 것이다. 우리가 희망과 인내를그리고 우주와 접촉하고자 하는 뚜렷한 열의를 지닌 종이었다는 사실을"

- 칼 세이건 < 지구의 속삭임 >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 김초엽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과학을 전공한 SF작가 김초엽은 작품을 통해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바로 곁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말조차 귀 기울이지 않는 반면에, 또다시 새로운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해서 수많은 비용과 노력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하는 것이죠.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 김초엽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일러스트 : 이규태, 자료 : 동아시아)

 

작가는 어느 시대와 공간을 살아가든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이라고 말합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어로도 녹음이 되어 있는 보이저호의 실린 지구인의 인사말.

 

그러나 천문학자들에 따르면 그 메시지가 실제로 외계생명체에 닿을 확률은 매우 희박합니다.

 

그것은 오히려, 오늘을 사는 우리, 지구인 스스로를 향해 존재해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이 메시지는 지구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 문홍규/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을 꿈꾸고 소망하지만, 우리가 우주를 향하여 어차피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는 것'이라면

 

먼저 나의 옆 사람에게 당도하라는

 

그것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피폐한 것인가

 

13년 전의 떠들썩함이 이만큼이나 허무한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2019.12.26)


☞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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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의 총격전이 벌어진 그곳은 서울 시내 한복판이었습니다.

남북한 비밀 요원들은 핵무기를 뺏고 빼앗기며 목숨을 건 추격전에 나섭니다.

드라마 < 아이리스 > 의 결정적인 장면이었지요.

촬영된 곳은 광화문광장 한복판이었습니다.

드라마 때문에 광장을 통제하다니…

더구나 2009년 그 당시는 광장에서 시위를 하는 것조차 좀처럼 허용되지 않던 시기였습니다.

"아이리스는 되는데 우리는 왜 안 되나" 시민들은 시위는 막으면서 드라마에 광장을 열어준 당국의 이중 잣대에 문제를 제기했던 기억입니다.

그때를 생각한다면 오늘의 광장은 그야말로 열린 공간 그 자체입니다.

누군가의 표현대로, 우리의 민주주의는 광장이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가히 '최고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지요.

광화문 물론, 검찰청과 여의도, 그리고 청와대 앞까지 개방된 광장의 풍경은 달라진 세상을 실감하게 만듭니다.

치고 빠지는 수법으로 텐트를 설치해가면서 주목을 끌었던 이들을 시작으로 해서 주말의 대한문 인근은 차도까지 점거해가며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시위대의 세상입니다.

아스팔트 거리 한복판에선 밤을 지새우는 이른바 구국통성기도회가 열리고 태극기와 노숙 텐트는 물론이고 외국 악기인 부부젤라까지 동원돼서 인근 주민들의 일상을 방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광장이란 누구에게나 열린 장소라고 하는데…

민주사회 시민에게 '광장이란 대체 무엇인가'라는 매우 근본적인 질문이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이지요.

1년 전에 세상을 떠난 작가 최인훈.
 

인간은 광장에 나서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표범의 가죽으로 만든 징이 울리는
원시인의 광장으로부터…
현대적 산업 구조의 미궁의 이르기까지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는 수많은 광장이 있다

- 최인훈 < 광장 >

그의 일생을 지배한 화두는 바로 '광장'이었습니다.
 

광장이 죽은 곳. 이게 남한 아닙니까?

- 최인훈 < 광장>

그의 작품 속 주인공 이명준은 남과 북 어디에서도 끝내 자신의 '광장'을 찾지 못하고 절망했습니다.

그리고 2019년 겨울의 광장.

모두에게 열려 있으나, 그 열려 있음을 빌미로 해서 점유되어버린 무법의 공간.
 

다만 나에게 한 뼘의 광장과 한 마리의 벗을 달라

- 최인훈 < 광장 >

시민들의 공간을 점거한 그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사이에 소설 < 광장 > 의 이명준은 오늘도 어디에선가 진정한 민주주의의 광장을 찾아 헤매고 있을까…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2019.11.26)


☞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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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 윤석열/당시 여주지청장 (20131021/서울고검 국정감사)

 

그의 말은 명언처럼 회자되었습니다.

 

지난 정부 국정농단 특검의 중추였던 사람.

 

검사는 수사로 말할 뿐

 

결코 권력자에게 줄 서지 않는다는 의미를 품은 그의 말은 모두의 마음을 조금씩 들뜨게 만들었죠.

 

검찰은, 그리고 나라는, 이제는 달라질 수 있을까

 

이미 알려진 것처럼 검찰의 과거는 그리 자랑스럽지 못합니다.

 

"정권은 유한하고 검찰은 무한하다"

 

정권의 안위가 무엇보다 중요했던 권력일수록 검찰을 최대한 이용하려 해왔고, 그러한 공생의 과정에서 그들은 무소불위의 지위에 올랐으니까요.

 

"'검찰' 다워질 마지막 기회다"

- 참여연대

 

탄핵정국 당시에 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이 원한 것은 제대로 된 나라, 즉 헌법대로 삼권 분립이 지켜지고 시민이 주인인 나라였고, 그 핵심과제 중의 하나가 바로 검찰개혁이었기에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총장을 임명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추운 겨울 광장에 섰던 사람들은 그 겨울에 가졌던 희망만큼이나 커다란 고민에 빠져 있는 것

 

사람에 충성하지 않고 수사로 말한다는 그의 소신을 존중하는 한편으로는, 혹 그러한 소신이 검찰 지상주의의 오류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자라나는 것이지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았습니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 말에 앞서 또 다른 대화가 존재합니다.

 

"(조직을 사랑합니까?) , 대단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 윤석열/당시 여주지청장 (20131021/서울고검 국정감사)

 

"나는 검찰주의자가 아닌 헌법주의자" 라고 말했지만, 어떤 이들은 그를 '검찰주의자' 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는 검찰주의자그가 가진 이데올로기는 보수도 진보도 아니고 바로 검찰"

- 성한용/선임기자 (201999/한겨레)

 

사람에게는 충성하지 않지만 조직에 충성하는 것은 어찌 보면 그에겐 본능과도 같은 일일지도 모를 일이죠.

 

그러나 그가 충성하지 않겠다는 사람은 분명히 권력자일 것이고, 우리는 그런 그의 소신이 반갑고 소중하지만 동시에 그는 검찰조직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 즉, 시민에게 충성할 것이라는 믿음을 우리는 갖고 싶다는 것.

 

그래서 그가 말한 것은 궁극에는 한 사람을 위한 검찰이 아닌, 말 없는 다수의 사람들

 

공화국의 시민들을 위한 검찰이라는 뜻이어야 한다는 것.

 

검찰개혁이란 명제는 한국 사회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부정하기 어려운 것이라면 이를 위한 시간은 지금도 가차 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2019.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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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절박했습니다. 그러나 어제 일어난 일은 정말 미안합니다."

- 자유와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홍콩인 모임

 

홍콩의 시위대는 공항 마비로 불편을 겪은 사람들에게 사과했습니다.

 

진심을 담은 그 사과는 시위대의 절박한 마음을 다시 한번 더 들여다보게 만들었지요.

 

동양 문화에서 사과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매우 기본적인 예의에 속합니다.

 

우리가 자주 쓰는 언어들만 살펴보아도 그렇고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송구하오나"

 

중국에도 사과 문화는 뿌리가 깊어서 그들은 "부하오이쓰",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사용하죠.

 

일본으로 건너가면 그 사과 문화는 절정에 이르러서

 

"모자를 누군가가 주워 줬다면그것을 받으면서 느끼는 마음속의 괴로움을 '스미마셍'으로 고백

- 루스 베네딕트 < 국화와 칼 >

 

타인의 도움을 받거나 심지어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도 "스미마셍", '미안합니다'를 습관적으로 외칩니다.

 

그들은 무엇이 늘 그렇게 미안할까

 

반면 그들은 무엇 때문에 그토록 미안해하지 않을까

 

바로 어제

 

"캐논니콘캐논은 두 대네요"

-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 (2019821)

 

그는 야릇한 미소를 머금은 채 우리를 향해 말했죠.

 

그는 자신의 발언을 비판적으로 보도하는 한국 언론사의 카메라조차 일본산임을 조롱하듯 강조했는데

 

굳이 속내, 즉 그들의 말대로 혼네를 드러내 보이지 않아도

 

"일본 취재진에게 카메라가 무거워 보여 잡담 도중 물어봤던 것"

-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

 

우리는 그들의 속마음이 어떠한지 너무나 잘 압니다.

 

정부는 오늘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했습니다.

 

당위론과 신중론이 팽팽히 교차했지만 어쩌면 그것은 협정 종료로 가는 과정이었을 뿐

 

당위만큼 큰 힘을 갖는 명분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상대가 우리를 신뢰하지 않는데 우리는 상대를 신뢰할 수 있는가"

 

이제 남은 과제는 우리 자신이 더욱 정교해지고 또한 더욱 단단해져야 한다는 것

 

이미 한참 전에 일본을 연구한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모순'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일본인만의 독특함을 설명했습니다.

 

"일본인은 싸움을 좋아하면서 얌전하며, 불손하면서 예의 바르고, 용감하면서 겁쟁이며, 보수적이면서 개방적이다."

- 루스 베네딕트 < 국화와 칼 >

 

그리고 그가 내놓은 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본인들은 자기 행동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놀랄 만큼 민감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이 자기의 잘못된 행동을 모를 때는 범죄의 유혹에 빠진다"

- 루스 베네딕트 < 국화와 칼 >

 

불매운동이든, 지소미아의 종료든, 우리의 모든 행위가 그들에겐 자각의 동기가 되기를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2019.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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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식이 뛰어난 어느 학자는 낯선 땅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는 기이한 일을 겪으며 자신의 그림자를 잃어버리게 되었는데

 

"그림자를 잃어버렸잖아! 이것 참 신경 쓰이는군"

- 안데르센 < 그림자 >

 

주인은 이내 자신의 그림자를 잊었지만

 

문제는 혼자서 긴 여행을 마친 그림자가 다시 돌아온 이후부터 시작됐습니다.

 

", 당신이 나를 알아봐 주기를 바랐는데내가 다시 돌아오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거군요."

- 안데르센 < 그림자 >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능력과 권세를 과시하던 그림자는 아예 그림자가 아닌 주인이 되고자 했고

 

"내 궁전에 살면서모두가 자네를 그림자라고 불러도 가만히 있어야 해자네가 인간이라는 사실도 절대 겁 없이 말해서는 안 돼"

- 안데르센 < 그림자 >

 

급기야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과거의 주인 즉, 학자를 살해하고 만다는 비극적인 결말

 

안데르센의 동화 같지 않은 동화 '그림자'의 줄거리였습니다.

 

일본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3년 전에 안데르센 문학상을 받게 된 그는 수상소감을 이야기하면서 이 '그림자'라는 작품을 끄집어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그림자가 있듯, 사회와 국가에도 모두 그들만의 어두운, 피하고만 싶은 '그림자'가 존재합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모든 사람에게 그림자가 있듯, 사회와 국가에도 모두 그들만의 어두운, 피하고만 싶은 '그림자'가 존재한다'는 것

 

"밝고 빛이 나는 부분이 있다면, 그 이면에는 반드시 어두운 부분이 있습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밝고 빛이 나는 부분이 있다면 그 이면에는 반드시 어두운 부분'이 존재하며,

 

"그림자를 수반하지 않은 빛은 진정한 빛이 아닙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그림자를 수반하지 않은 빛은 진정한 빛이 아님을' 강조했지요.

 

"아무리 역사를 다시 써서 우리에 맞게 수정하려 해도 종국에는 우리 스스로 상처 입고 가슴 아파하는 일이 생길 것입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그것은 작가 자신은 물론이고 수많은 독자들을 향한 조언이자 국가와 권력을 향한 충고이기도 했습니다.

 

오늘(15)은 우리에게는 광복일이자 누군가에게는 종전일 혹은 패전일로 기억됩니다.

 

그들은 전쟁과 식민지배라는 자신들의 그림자를 부정하고 싶어 하지만

 

부정하면 할수록 그림자는 더욱 커지며 자신들의 빛도 기운을 잃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 그들의 수장은 또다시 자신의 그림자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대체 언제까지 그 그림자를 돌아봐야 하느냐고 외치고 있지요.

 

안데르센의 작품 '그림자'의 주인도 어둠으로 가득한 자신의 그림자를 지워버린 채 잊고서 살아가고자 했습니다.

 

영원히 지워버리고 싶었을 것이나

 

저 혼자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 그 어두운 그림자는 어느 순간 주인에게 돌아와 문을 두드리며 속삭입니다.

 

"내가 돌아왔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2019.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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